화암사 소개
금강산 팔만구암자의
첫 번째로 손꼽히는 화암사
금강산 팔만구암자의 첫 번째로 손꼽히는 고성군 토성면 화암사길 100에 위치한 화암사(禾巖寺)는 전통사찰 제27호로 신라 혜공왕 5년 진표율사(眞表律使)께서 창건하셨다고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. 진표율사는 법상종의 개조로서 법상종은 참회불교의 자리매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습니다.
지금으로부터 359년 전인 인조 11년 택당 이식(李植) 선생이 간성군수로 있을 때 썼다는 「간성지 화암사조」에 따르면, “천후산 미시파령(天吼山 彌時坡嶺=미시령) 밑에 화암(禾岩)이란 바위가 바른편에 있기 때문에 이름을 ‘화암사’라 했다고 전한다.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어 가까이는 영랑호, 멀리는 창해(滄海)에 임해 있고 양양, 간성의 모든 산과 평원 심곡이 눈 아래 보이고 넓고 아름다운 경치가 장관입니다. 뒤에는 반석과 폭포가 특수한 모양을 하고 있어 가히 볼 만합니다.
이후 1622년에 절이 불에 타버렸으며, 지금은 중건 중이나 완공되지 못했습니다. 옛날에는 크고 우아한 문루가 있었는데 망가졌습니다.
문루에서 바라보는 창해에서 해 뜨는 모습은 강호를 찾는 데 있어 이보다 나은 곳이 없는데, 옛사람들은 찾아와 놀아보지 못했으며 지방 사람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또 관동지방에는 이름난 곳이 많아 과객들이 이곳까지 올 겨를이 없었으므로 화암사는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.”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.
1911년 건봉사의 말사가 되었고 1915년 소실되었고 6.25 사변으로 폐허되었다가 1986년 중창하였습니다. 이처럼 화재로 인한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다 1991년 고성에서 열린 세계잼버리대회 때 불교국가 청소년 1000여 명이 대웅전에서 수계를 받아 유명해졌습니다. 동쪽에는 발연사가 있고, 서쪽에는 장안사, 남쪽에는 화암사가 있어 금강산에 불국토를 이루려는 진표율사의 뜻이 담겨 있는 사찰입니다. 화암사는 오랜 세월 동안 흙 속에 묻힌 옥돌처럼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근래에 이르러 대현 주지스님의 원력으로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고 새로 재건, 단장되어 많은 불자들과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.
화암사는 최북단 금강산 남쪽 첫 관문인 사찰로, 2011년 4월 5일(음력 3월 3일 삼짇날)부터 온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한 「미륵대불 및 해맞이 공원 조성 불사 1000일 기도회」를 진행하였고 향해 2014년 10월 25일 미륵부처님 점안법회를 봉행했습니다.
부디 전국 불자들의 동참과 함께 미륵부처님의 나투심으로 속히 통일이 이루어지고 이 나라가 미륵 부처님의 무량한 가피와 복덕으로 용화안락 정토가 구현(具顯)되기를 간절히 발원하고 있습니다.